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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나?

처음마음 2012. 10. 1. 13:26

 

용서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나?                            paul

 

* 삶이 때때로 힘든 것은 삶의 조건과 상황들이 계속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더라도 잠시 잠간이고, 다시 원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이건 상황이건 좋아하던 것과는 조만간 헤어지게 되고, 싫어하는 것들과 마주치게 된다.......하나도 그대로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거의 언제나 균형을 잃고 동요하게 된다. 고통이다.

* 가장 잦은 마음의 고통은 누군가에 대한 화(anger)와 미움(hatred)이다. 마음에 누군가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품고 있는 한, 아무리 자신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옳다고 믿더라도 여전히 그 마음은 고통에 시달린다. 미움을 품고 있는 동안 그 불길의 첫 번째 희생자는 언제나 자신이다.

 

* 자기 마음이 고통받고 있는 줄 모르고 그저 머리로 시비만 자꾸 되씹고 미움만 단단히 다지고 있으니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분노와 미움을 품고 있는 동안 상대방에게 보복하고 있다는 어리석은 망상을 지어내어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어 놓고 있는 꼴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대부분이 수 없이 되풀이 해 온 지독한 우매함이다. 그런 무지와 우매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다. 용서(容恕)다.

 

* 때문에 예수님의 고귀한 가르침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바로 용서였다. 제단에 희생물을 바치기 전에 다툰 형제와 화해하고 오라던가,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지으면 일곱 번 정도가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던가,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가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신 말씀 등 상당히 많다. 모두가 우리 마음 깊이 와 닿는, 따라서 믿음을 가지고 무조건 순종해야 할 고귀한 가르침이다.

 

* 그러나 또다른 고통스러운 현실은 내 마음이 언제나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머리로는 용서를 해야겠는데 가슴으로는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용서를 그토록 자주 강조하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수 없이 고백하고 찬송하고 매주 미사에 나가 주기도문을 암송하는데도 내게 잘못한 어떤 이들에 대한 미움의 매듭은 좀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마귀의 짓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스스로가 한 선택이다.

 

* 용서하는 마음은 결코 구름 위에 있는 누군가가 베풀어주는 선물이 아니다. 비록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서 용서를 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그렇게 돌린 것은 역시 자신의 선택이요 자신의 결정이다. 그 점에서 내 마음의 주인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고, 그래서 내 언행을 좌우하는 내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책임은 언제나 그리고 전적으로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예수님같은 성자들은 다만 자유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을 뿐이고,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걸어가야 할 책임은 100% 우리 각자에게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무조건적인 용서를 배워 나갈 수 있는 길에 접어드는가 하는 점이다.

 

* 용서하는 마음이 근원적으로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면 그 길이 보인다. 우리는 그 길의 입구를 용서(容恕)라는 漢字의 말뜻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받아들일 ‘容’(용)자와 용서할 ‘恕(서)’자가 합쳐진 이 단어의 핵심은 물론 ‘恕’(서)자이다. 그런데 용서할 ‘恕’(서)자는 다시, 같을 ‘如’자와 마음 ‘心’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나나 상대나 근본적으로는 “같은(如) 마음(心)을 지닌 존재”라는 진실을 알고 받아들이는(容) 상태가 곧 '용서(恕)'임을 말해 준다. 생각할수록 용서할 '恕'자는 참으로 심오한 의미를 지닌 뜻글자이다.

 

*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놓고 돌로 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을 때 아무도 그녀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고 돌아갔다. 어째서 그러한 놀라운 반전(反轉)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그 말씀 한 마디가 자신의 내면을 모르고 오로지 율법으로 남을 시비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그들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그들 자신도 궁극적으로는 “같은(如) 마음(心)을 지닌 존재”라는 깊은 진실을 자각하게끔 일깨워 주셨기 때문이다.

 

* 그렇다. 내가 아무리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상대방이라 하더라도 그나 나나 파헤쳐 보면 “같은 마음세계를 지닌 존재”다. 상대방 언행에 대하여 율법학자인양하고 있는 내가 그 사람보다 반드시 더 현명하거나 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반드시 그보다 더 못나거나 악한 것도 아니다. 매일 홀로 고요한 마음으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기도를 하면, 그가 저지른 그 잘못보다 더 추하고 더 쓰레기 같은 부정성들이 내 안에 가라앉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 나 보다 더 큰 죄인이 있을까하는 그런 고귀한 앎(noble knowing)이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 이와 같이, 내게 잘못한 그 사람이나 나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같은(如) 마음(心)을 지닌 존재”일 뿐이라는 진실을 기도 속에서 자꾸 알아차리고 목격하는 일 ----그것이 절로 용서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샘이요, 스스로 짊어진 고통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의 입구다. 그리고 내 안에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런 특질을 키워가면서 살려는 노력이 바로 건실하고 참된 신앙이다.

 

형제, 자매님들 모두 오늘 하루도 평화롭고 조화롭고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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